온라인 게임이 세상에 창궐한지 10년이 지났어도, 신문에 노출되는 정보가 하도 왜곡되다보니까.. 여전히 온라인 게임 안해본 대다수의 국민들은 신문에서 읽은대로 온라인게임의 중독성을 욕하고, 그게 뭔지도 모르지만 리니지를 욕하고 본다. 또한 온라인 게임 해본 대다수의 유저들도 일단 딴건 몰라도 리니지는 욕하고 본다. 한국 MMORPG 장르 10년의 산 역사...인 리니지에 대해서 이야기 안하고 넘어갈 수는 없을 것 같다.
1998년, 세상 사람들이 인터넷따위는 뭔지도 모르고, MUD 에서 채팅으로 표시되는 메시지를 보면서 몇십명씩 놀고 있던 시대에 충격적인 그래픽으로 선을 보였던 리니지는 정말로 획기적인 물건이었다. 일단 그래픽이 선명하고, 시스템이 가벼워서 게임을 안하던 사람들도 이해하기 쉬웠고, MUD를 해보지 않았어도 마우스 클릭만으로 게임이 가능했다. PC통신망에 기대지 않고 인터넷 망으로 가능하던 첫번째 게임이었으며, 강한 커뮤니티 기능을 갖고있었고, 초반부터 외국 유저들을 받았다. 동접 200명이 되게 해달라고 빌었었다는 리니지의 제작진들은.. 그게 한국 최고의 인터넷 유행이 되었다가, 세계(정확히는 아시아) 최고의 온라인게임이 되었다가, 폐인 양성의 악의 축이 되고, 아이템 현거래의 온상이 되었다가, 게임 시들시들해진 지금도 동네 북처럼 심심하면 언론에서 얻어맞는 지난 10년의 세월에 대해 할 말이 많았을 것이다. 아마도, 사람들이 그렇게까지나 그걸 좋아할 지 몰랐다.. 는 것이 아마 제일 큰 항변일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이걸 좋아했고, 일부 사람들은 너무나 좋아해서 그 안에서 잘나가기 위해서 뭐든지 했다. 학교를 휴학하고 생업을 내던지고 애인과 결별하고 폐인이 되질 않나, 밤을 샜다가 과로사하질 않나.. 커뮤니티로 세를 불리면 싸우는 재미가 배가 되자, 패거리를 불리는게 허벌 중요해졌다. PC방 주인들은 모든 손님들에게 나서서 리니지를 하는 법을 강의해주었고, 많은 PC방들이 통째로 리니지 커뮤니티가 되었다. 심지어는 현금을 주고 아이템을 샀고 (초기에는 정말 쇼킹한 일이었다), 게임 내에서의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 스파이를 두달간 심어놓았다던가 상대 PC방의 랜선을 잡아 뽑는다던가 하는 일들이 일어났다. 많은 사람들이 리니지의 중독성을 욕하기 시작했지만, 정작 그 '중독성'의 요체를 지목하지는 못했다.
일년에 MMORPG가 60개쯤 (농담이 아니다!) 쏟아져나오던 2000년도 부근의 난리통에 나름 도박이라던지 선정적인 NPC라던지 더 강한 PK시스템 등등, 리니지를 앞서는 중독성이 있는 컨텐츠를 집어넣어보고자 하는 온갖 시도들이 있었지만 모두 실패했다. 아마도 그 이유는, 중독성을 사람들간의 연결성이 아니라 제작된 컨텐츠 자체에서 찾고자 하는 시도를 했기 때문이고, 두번째는 제작 기술이 딸려서였을 것이다. 웬만한 작은 업체들은 유저들이 쏟아져 들어와서 행하는 버그 플레이, 돈 복사, 아이템 복사, 해킹 공격에 당해내지 못했고, 혹은 컨텐츠와 경제 구조를 튼튼하게 만들만한 경험이나 아이디어가 부족했다. 유저들은 신뢰감이 없는 서비스에 전력을 다하지 않기 때문에, 안정성 없이는 네트웍에 기반하는 '중독성'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리니지 이후에도 튼튼한 기반을 갖고, 유저들간의 연결을 만들어 내는 게임들이 몇년에 하나씩은 나와주었다. 세계 어디에서나 한 시대를 풍미할 수 있을 게임들이었다. MU가 그랬고, 라그나로크가 그랬고, 리니지 2가 그랬다. 그러나 그들중 아무도 리니지 1을 망하게 하지 못했다. 리니지는 네트웍을 기반으로 성장했고, 결국 제어를 벗어날때까지 성장했다. 현금거래 시장이 자가발전을 시작했고, 기묘한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네트웍과 오프라인 양쪽에 등장했다. 사람들은 PC방에서 합숙을 했고 게임 내에서 앵벌이를 하기 위한 기업형 프로그램들이 등장했다. 프로그램이 안되자 인건비가 싼 중국으로 작업장이 이동했다. 그걸 이리 막고 저리 막다보니 최근의 리니지는 이제 초기에 선보였던 대부분의 자유도는 모두 사라졌고, PK도 제대로 안되고, 공성전도 매가리가 하나도 없고, 땅은 너무 넓어져서 다른 유저랑 인터랙션도 제대로 안되는 기묘한 형태의 물건으로 변했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니지가 여전히 살아남아있는건 쏟아지는 비난에 굴하지 않고 계속 사람과 돈을 부어 게임을 방어하고 업데이트하는 NC의 집요함 때문이고(그러니 NC는 최소한 이게 1년 반 하고 만렙 찍으면 그다음에는 망할 물건이라는 것보다는 좀 더 발전된 시각을 갖고있었던걸 거다), 무엇보다 초기의 비난에 눈이 가려져서 집요하고 냉정하게 분석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효과적인 경쟁자가 등장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전직 게임기획자로써 부끄러운 마음으로 뒤를 돌아볼때마다 더욱 그렇다. 리니지가 처음 나왔을때는 다들 이를 RPG게임에 네트워크가 덧붙여진 버전이라고 믿었으며, 세계관이 정통파 RPG가 아니라고 비난하면서 더 정통적인 세계관을 도입하고, 더 복잡한 시스템을 만들고 더 액션성이 강한 게임 기획을 도입하려고 애를 썼다. PC방 때문이라고 생각했을때는 PC방에 인센티브제를 도입해서 깔아도 보았고, 심지어는 더 폭력적이려고도 노력해보았고, 더 선정적이려고도 노력해보았고, 어느 제정신이 아닌 회사에서는 시세조작을 통해 현거래 시장을 만들어보기도 했다. (최근까지도 이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초기의 리니지가 갖고있던 단순함을, 군더더기 없이 이해 가능한 세계와 네트워크 효과에 주목한 시도는 많지 않았고, 심지어 기술적 안정성을 획득하는것조차 10년이 지난 지금도 쉽지 않다.
시간은 빨리 지나가고 기억은 잊혀진다. 한때 이게 한국 온라인게임계를 기술적으로 도미네이트하던 게임이고, 여전히 백만여명의 유저에게 영향력이 있다는 것은많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언론이 도돌이표처럼 늘어놓는 비난만 허공에 남았다. 그러니 이제 리니지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적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욕하는 건 쉽다. '폭력적이고 중독성이 높고 현거래가 있는 게임이다'. 무엇보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알고 있고, 실제로 그 물건에 그런 속성이 있는 한은 더욱 그렇다.
2007년 현재, (리니지를 비롯한) 온라인게임은 그닥 폭력적이지 않다. 만일 정상적으로 15세 이상 이용가 판정을 받은 게임이 다른 물건보다 더 폭력적이라면 게임물등급위원회에 신고하라. 2007년 현재, 온라인게임과-리니지는 게임 자체로는 다른 물건에 비해 그닥 중독성이 없다. 폭력적인것은 손에 일단 뭔가를 잡기만 하면 최선을 다해 폭력적이 되는 인간집단의 기본 속성이며, 중독성이 있는것은 그런 사람들을 서로 연결하는 인터넷과, 잘 만들어진 네트워크 엔터테인먼트 서비스 전체의 기본 속성이다. 우리나라에는 게이머는 많지 않다. 네트웍망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노는게 재미있다는걸 알고 있고, 좀 힘껏 주목받으면서 머리 안 쓰고 놀아보고자 하는- 그게 인터넷 게시판에 닥치는대로 악플을 쓰는 방식이든 눈에 보이는 사람들을 닥치는대로 pk 하는 거든 - 사람들이 산만큼 있을 뿐이다. 그리고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현금으로 바뀔 가치가 있다고 느껴지는 모든것은 현금화된다. 그것이 게임을 하는 시간이든, 드문 확률로 얻어지는 아이템이든, 뭐든지 상관없다. 그 현금거래가 이익이 된다면, 거기에서 기업-이익만을 목적으로 하는 인간집단- 이 탄생한다.
그러니 온라인게임에 대해서 악플을 달 때는 본인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MMORPG에서는 PK라는 기호로 표현될 뿐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블로그 가득한 스팸과 뉴스기사 아래 가득한 악플과 사이트마다 창궐하는 바이러스를 생각하자. 인간 집단은 폭력적이고 거기에 접속하는 일은 중독적이며, 그건 MMORPG같은 작은 세계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그리고 한국의 인터넷 집단의 역사 중, 단일 집단으로 규모와 역사가 가장 크고 선명한것이 리니지이다. 단지 그 뿐이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